영화<용의자 X>

2013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주변에는 여전히 실업, 자살, 절망, 실패 등의 단어들이 계속 들려온다. 얼마 전 <용의자X>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거기서 주인공 남자는 살인을 저지른 한 여성을 위해 자신이 살인죄를 대신 진다.

영화의 중반부까지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도와주는 이유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의 치밀한 계획이 어느 정도 잘 풀려가는 것처럼 보일 무렵 오해가 생기면서 여자는 이제 남자가 그저 자신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반부에서 영화는 남자가 여성이 어려움에 빠져 있는 상황을 알게 되는 과정을 ‘벽’을 통해 소개한다. 눈으로는 서로 완벽히 차단된 것처럼 보이지만 늘 실상에서는 의외로 매우 얇은 ‘벽’을 등지고 우리는 살아간다. 가끔 옆집, 또는 앞의 호실에서 때로는 위층에서 또는 아래층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들을 때가 있다. 하지만 옆집에서 과격한 부부싸움이 일어나도 쉽게 나서지 않는 게 요즘이다.

영화에서는 옆집의 웃음소리, 분노, 기쁨 등의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지만 모른척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비웃는 듯 남자 주인공이 곤경에 처한 여자에게 달려간다. 남자가 자신이 살인죄를 대신지고 갈 만큼 여자를 도와 준 동기는 공명심도 첫눈에 반한 사랑도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증명하고 싶은 수학의 명제에 빠져서 그것 때문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지만 결국 증명하지 못하자 어느 순간 남자는 자살을 결심한다. 그 때 여자 주인공이 아무렇지 않게 보여준 작은 관심들로 인해 그는 자신의 ‘존재 인식의 대상’을 얻게 된다.

즉 자신은 명제의 증명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얻으려 했지만 그를 살게 한 것은 옆집의 눈인사나 미소 따위의 작은 관심이었다. 그래서 여자 주인공이 남자를 잘못 오해하고 자신의 육체를 마음대로 하라고 하지만 남자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명제는 인식적 가치(epistemic value)에 대한 문제이다. 그것은 참(ture)과 거짓(false)으로 논해지지만 영화 <용의자X>에서 보여 준 것처럼 죽을 때까지 참과 거짓을 증명하지 못하는 게 우리 인생의 다반사이다.

2013년의 사자성어는 제구포신이다. 뜻인 즉 묵은 것은 없애고 새 것을 펼치라는 뜻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묵은 것들의 아픔 기억들은 결코 혼자 보내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증명하기 바쁜 현대인들에게 올해 목표는 우리 주변사람들에 대한 작은 관심으로 출발해보면 어떨까. 그 작은 관심이 이 순간 어느 죽어가는 생명을 일으킬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