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바우만의 <새로운 빈곤>

간혹 이성인 누군가를 소개받을 때 과거에 묻는 첫 질문은 ' 그 사람 직업이 뭐야?'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사람 차는 뭐야?, 집은 있어?, 해외 연 수는 갔다 왔어?, 영어는 좀 하니? 라는 질문들이 더 무게감 있게 다가선다.

이유가 뭘까? 사회학자들은 대략 두 가지 부분으로 최근 현상을 해석하고 있다. 하나는 직업에서 주는 안정망이 사라진 까닭으로 보고, 다른 하나는 감각적 소비에 길들여져 있는 탓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둘은 별개의 요인이 아니다. 과거에 소위 '사'가 들어간 직업은 절대적 선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의사나 변호사나 회계사 등도 자본 논리로 돌아간다. 쉽게 말해 대기업이나 거대 자본에 속한 '사'들은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지만 나머지는 스스로 고객을 찾아야하는 고달픈 '직업'이다.

과거에 직업을 물었던 이유는 그 직업으로 안정된 미래를 함께 '생산'하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미래에 대해 함께 무엇을 '소비'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그것을 '생산'의 시대에서 '소비'의 시대로 돌아섰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어찌 되었건 요즘 사람들은 직업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어느 자동차 광고처럼 당신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지 말고 '이' 차를 타라고 권한다. 남성들이 '차'라면 여성들은 아마도 '백'일 것이다. 샤넬, 구찌, 프라다 등의 소비를 통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이고 싶어 한다.

'사'자가 들어간 직업군의 사람들은 '실업'이 되어도 아직 소생의 기회들이 얼마든지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최근 일어나고 있는 실업의 현상을 과거와 비추어 본다. 과거의 '실업'은 불황에서 벗어나면 언젠가는 다시 취업할 수 있는,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을 뜻했지만 현재 '실업'은 '최하층계급'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특히 전문직이 아닌 노동자 계층에서 이런 확률이 높아진다고 전한다.

예를 들어 대기업 노동자들의 경우 대기업에서 실직을 하면 중소기업으로 재취업을 하고 중소기업에서 실직하면 영세기업으로 들어갔다가 그 마저도 끓어지면 파트타임제로 돌아선다. 이제 파트타임제로 들어서게 되면 실직을 하여도 오직 끝없는 파트타임 사원으로 취업하게 되고 상층부의 직업군 계층이동은 일어나기 어려워져도 우리는 큰 불만 없이 일을 해야만 한다. 그것은 무언가 '생산'하기 위함이 아닌 무언가 '소비'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소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대 사회에서 이상한 사람으로까지 취급받는다. 최근 들어 스마튼 폰이 널리 퍼지면서 노령인구를 제외하고는 스마트 폰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취급받는 것을 감안할 때, 스마트 폰의 구입 능력이 힘든 사람마저도 모두 동시대의 사람으로 뭔가 고리타분하고 이상한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소비하여 구입할 수밖에 없다.

그럼 '최하층계급'은 무엇인가? 바우만은 군나르 뮈르달(Gunnar Myrdal)가 1963년 탈산업화가 수많은 이들을 영구히 실직자로 만드는 위험적 사회를 경고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전한다. 그에 따르면 "실직의 이유는 실업자가 된 이들의 무능력이나 도덕적 결함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일자리가 필요하고 일자리를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돌아갈 일자리가 부족한 탓"이라고 말한다.

소비주의 현대 사회에 와서는 이 '최하층계층'의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이전에는 단순히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을 일컬었지만 1977년 8월 미국의 '타임'지는 '최하층계층을 비행청소년, 미혼모, 폭력범, 방화범, 마약 밀매상, 거지 등으로 확대시켰다고 바우만은 말한다.

이 안에는 두 가지 위험한 논리가 있는데 첫 째는 소위 범죄자가 아닌 미혼모나 돈이 없는 사람들까지 이 분류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바우만은 둘째 이유를 매우 심도 있게 전하는데 이런(최하층계급으로 몰락한)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거나 못했기 때문이라 해도 그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선택이 된다. 마치 최하층계급으로 몰락하여 계속 그렇게 사는 것이 선택의 문제인 것처럼.

여기서 소비주의와 가난이 공통점을 찾는다. 바로 '선택'이라는 부분이다. 소비주의는 이미 노동도 노동(work)과 노동시장(labour market)으로 불리 시켜놓고 노동을 이야기 할 때 오직 '유급노동'만을 취급한다. 이런 상황은 가사노동을 하는 무임노동의 여성들에게 가사노동은 '노동'처럼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이제 노동은 유급노동과 유급노동을 통해 소비를 하는 노동자만을 정상인으로 만든다. 생산하므로 소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소비하기 위해 생산하는 것이다.

최근 취업전선에서 밀려난 실직자들을 사회가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은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이다. 실직한 어떤 지인하나는 집 안에 있을 때는 모르겠는데 밖으로 나오면 아무것도 사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한다. 바우만은 이 소비주의를 '노동윤리'와 연결시켜서 전개한다. 만약 이 전개방식이 궁금하다면 <새로운 빈곤>이라는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이제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마치 거대 소비주의 사람들만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회에서 너무나 적은 급여를 받고 있거나, 아직 취업을 못한 사람이나 실직한 사람이라서 선택을 하지 않거나 선택한 것들을 소비할 수 없는 그들에게

책은 전한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