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사랑이 이루어지기 어 렵다고 말한다. 그것은 단순한 개인의 몇 사 람의 ‘견해’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 에서 나온 말이어서 많은 사람들도 그 의견에 대체로 동조하는 편이다. 왜 첫 사랑은 이루 어지지 않는 것일까.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영화 이름은 <건축학개론>이다. 집을 지을 때 기초가 튼튼해야하듯 사랑도 기초가 튼튼해야한다고 유치하게 이야기하기 위해 건축학개론이라고 제목을 지었다면 영화가 너무 시시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자신의 세상처럼 보이고 이제 어른의 문턱에 들어선 듯 느껴지는 대학교 새내기. 건축학과 승민과 음대생 서연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난다. 개론이기 때문에 타과학생도 교양으로 들을 수 있다는 부연설명도 영화는 잊지 않는다.

첫 번째 수업시간에서 교수는 자신이 사는 ‘집’의 위치를 물어보면서 자신의 집이 어떤 곳인지를 살피기 전에 자신이 사는 집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먼저 살펴보라고 말한다. 자신이 사는 집 주변을 무심코 여겼던 승민은 동갑내기 서연과 함께 같은 동네에 사는 것을 알게 되고 함께 숙제를 하며 친하게 된다.

서연은 언젠가 자신이 원하는 집의 이상형을 설명하고 나중에 그 집을 승민에게 맡기겠다고 전한다. 승민은 서연이 장난삼아 그린 집의 모형을 만들어 놓고 어느 날 사랑을 고백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 날 건축과의 같은 학과 선배에게 술을 강요당한 서연은 승민이 숨어 지켜보는 것도 모른 채 자신의 자취방으로 선배에게 이끌려 함께 들어가게 된다.

그날 이후 승민은 서연을 외면하고 오랜 시간 기다린 서연에게 “꺼져줄래”라고 어설프게 말하며 둘은 헤어지고 만다. 둘의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서로의 ‘오해’ 때문이었을까. 대부분의 첫사랑은 ‘오해’ 때문에 헤어지는 것일까.

영화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안타까운 ‘오해’에 두지 않는다. 그 ‘오해’는 다만 ‘주변’보다 자신을 먼저 챙긴 ‘아집’ 속의 부산물일 뿐이다. 서두에서 말했듯 좋은 건축물은 내가 지을 자신의 땅만 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무엇이 있고 그 무엇이 자신의 집과 어떻게 공유하고 어울리지는 살피는 과정 속에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첫사랑은 상대방을 먼저 살피기보다 자신이 꿈꾸고 이상화시켜온 이미지에 모든 것을 국한시킨다. 서연이 선배와 그날 잠자리를 했건 안했건 그건 승민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날 밤 그 사건 자체가 자신이 꿈꿔 온 사랑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토록 가슴 떨리게 했던 여인에게 “꺼져줄래”라고 말하는 것이다.

서연 또한 승민이 마음에 있었지만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선배와 차 안에서 승민을 비웃고 모독하는데 동참한다. 첫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처음 하는 사랑이라서 아직은 타인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 서로의 감정을 확인했을 때도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나’ 자신보다는 ‘주변’을 살피기 때문이다.

서로 나이가 들어 어느 덧 자신들을 보호해 주셨던 부모님이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서 자신보다 부모님을 더 생각해야 하는 서연이나, 서로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약혼녀를 버리지 않고 함께 하는 승민도 이제 자신보다는 ‘주변’을 살펴야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아는 나이로 성숙한 탓이다.

건축이라는 것이 혼자 독단적인 조형물이 아니라 주변과 융합할 때 합리적이고 아름답게 결과물이 나오듯 사랑이라는 것도 내가 설정해 놓은 것을 맞추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살피고 함께 맞추어 나간다는 것을 안다면 ‘첫사랑’뿐만 아니라 다양한 만남의 실패도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