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그랜토리노>

한 노인이 있다. 미국인으로 한국 전쟁에 참가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평생 그 짐에서 벗어나지 못한 노인. 한 때 포드의 자동차 공장에서 일했던 그가 가장 아끼는 것은 죽은 아내 이후로 '72년산 그랜 토리노' 차와 그가 기르는 개뿐이다.

 
자식도, 손자들도 성가시게 여기는 그에게 더욱 성가시게 하는 일이 생겼다. 옆집에 사는 이웃집 소년 타오가 갱단의 협박으로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 한 것이다. 갱단의 협박이라는 것을 알고 일단 그는 타오를 용서한다. 이웃이나 외부와의 만남도 차단 한 채 살고 있는 그에게 문을 두드리는 것은 타오의 누나 수와 젊은 신부뿐이다. 수는 내성적인 타오와 달리 자신이 해야 될 말과 행동을 하는 인물도 등장한다. 동생이 갱단에게 당할 때도 갱단에게 소리치며 나무라고, 거리에서 만난 불량배들에게도 기죽지 않고 덤빈다.

 
타오나 수를 괴롭히던 갱단은 같은 '몽족'의 동양인이고, 불량배들은 흑인이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노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적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를 알아주는 것은 피를 나눈 자식이나 자손들이 아닌 그의 옆집에 사는 '이웃'이다.

 
자동차 회사에 다닌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월트(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포드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크다. 자신의 아들이 일본의 차를 타고 다는 것에 대해 못마땅할 정도로 포드에 대한 프라이드는 크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에서 나이어린 갱단들조차 포드의 '72년산 그랜 토리노'를 못 가져서 안달이 나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 경영시스템을 주도했던 포드시스템은 한 때 생산성의 극대화를 통한 합리적 시스템으로 칭송받기도 했지만 '인간 소외 현상'과 기계식 경영을 증폭시키기는 등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점점 그 매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영화 그랜 토리노는 사실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 중 하나다. 그 이유는 인종 차별주의자였던 주인공(실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이 점점 그들과 마음을 열고 변화된 삶을 보여주는 모습과 마지막 '몽족'의 동양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남는 두 가지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그 하나는 시쳇말로 주인공이 끝까지 멋있으려 한다는 점이다. 이병헌 주연의 '달콤한 인생'에서 같은 동료에게 얻어맞는 이병헌에게 김뢰하가 내뱉는 말이 있다. "아 이 자식이 끝까지 멋있을려고 하네"

영화 속 주인공의 희생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참회와 이웃에 대한 연민을 '결자해지'적 차원과 연결해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몽족이 처한 현실의 어려움들이 미국 백인을 대표하는 주인공 하나의 문제로 끝날 수 없는 문제다. 타오나 수를 괴롭히다 주인공에게 총을 쏘아 잡혀간 갱단은 언젠가 다시 출소할 것이다.

 
타오나 수를 도와주고 싶다면 그는 이 문제를 홀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그 과정의 문제점들을 '타오'나 '수'와 함께 극복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마지막 시퀀스를 보면 타오는 결국 스스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체 주인공 월트 준 그랜 토리노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무언가에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짓는다.

 
또 하나의 아쉬움은 끝까지 포드의 시스템과 포드의 그랜 토리노 칭송하는 노익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있다. 그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포드에 대한 애정은 미국의 전성기를 상징한다. 하지만 한 때 '기술'의 진보적 성과를 보였던 포드는 영화에 있어도 '기술'의 진보와 함께 성장해야 했던 '기술자'의 진보적 모습은 월트나 타오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랜 토리노의 차를 타고 웃는 타오의 모습에서 왠지 기술자의 진보는 더욱 보이지 않고 한 때 기술의 진보만 있었던 것 같아 씁쓸함이 남는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주인공이 보여 준 자신의 잘못한 과거를 '인정'하는 모습과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은 이기적 현대 사회에서 매우 귀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