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셀 호네트 <물화>
경제가 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시장'이라는 용어는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올 한해도 '시장'이라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시장이라는 용어가 지속적으로 사용되면서 이제는 시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곳이 없다. 가령 시장이라는 용어가 이제는 노동이라는 곳까지 쓰이게 되었다. 그러나 '노동시장'이라는 용어에 대해 반감을 갖는 이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미 일반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노동자는 노동시장에서 가치가 있다 없다로 평가되며, 가격으로 때로는 연봉으로 환산된다. 시장이라는 규정된 공간 안에 어떤 사람은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우리는 쉽게 무시한다.
이렇게 사람을 시장 안에 물건처럼 볼 수 있는 것에 대해 게오르크 루카치는 '물화(物化)'로 표현한다. 즉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물건과 물건사이의 관계로 나타낸 용어다. 이 때 노동자만이 물화된 것이 아니라 노동자도 고용주를 또는 자본가를 단순히 돈을 주는 사람으로만 여길 때 물화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여기에 조금 더 깊게 파고들어 물화라는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한 책이 있다. 악셀 호네트의 <물화>라는 책이다.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루카치가 지적한 자본주의적 교환형식에서 '물화'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호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때 물화현상이 일어난다고 전하고 있다.
만약 자본가가 외국인 노동자에게 욕을 하고 때린다면, 그것은 외국인 노동자를 하나의 주체된 인격체로 '먼저' '인정'하지 않은 탓에 있다.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망각해 버리는 순간 외국인 노동자는 물건을 찍어내는 기계와 등치된다. 밀린 임금을 주지 않는다고 고용주를 때리거나 공장에 불을 질러 버린다면 그 또한 노동자는 고용주를 하나의 돈을 주는 기계로 밖에 보지 않은 것이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만 '물화'현상이 일어날까. 오늘날 남녀 간의 관계에서도 상대방을 '먼저' '인정'하지 않을 때 즉 조건이나 자기만의 이윤추구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도 물화현상은 일어난다. 루카치의 경우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물화'의 삶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물화는 자신과 상대방과의 상호관계뿐만 아니라 나와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나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도 나타난다. 나와 세계와의 조응에서 '물화'적 삶에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단순한 인정이 아닌 나와 관계 맺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을 인정할 때 그 다양함 속의 인정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물화'적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악셀 호네트는 전한다.
'인정'은 새로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곁에 늘 존재했던 의미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를 '인정'했다면 그것은 없는 것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 그저 망각했던 것을 깨닫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올 한 해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하나의 뜨거운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물화'적 삶에 젖어 '인정'을 망각한 채 살아가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 돌이켜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남출판 / 108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