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중
"갓길에서의 짧은 잠"
주인공은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밤의 과로로 주인공은 극심한 피로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좀체 속도를 줄일 수 없다. 피로감에 쫓기어, 주인공은 그 피로감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이미 오래전부터 제한 속도를 웃도는 빠르기로 계속하여 달리고 있다. 마침내 피로가 극에 달아 주인공은 어두운 밤, 차를 갓길에 대고 만다.
최수철 <갓길에서의 짧은 잠>은 한 주인공이 고속도로를 달리며, 일어난 이야기를 소설화하고 있다. 피로에 지쳐 갓길에 멈추어 버린 주인공. 주인공이 원했던 것은 ‘갓길에서의 짧은 잠’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이유인지 그의 짧은 잠자기는 쉽지 않다.
톨게이트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동승시킨 주인공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그 여자의 남자가 계속해서 쫓아오는 것 같은 초조감을 느낀다. 처음에 남자는 자신의 가는 길 어딘가에 여자를 내려놓아 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속도로라는 곳은 무한질주의 장소이다. 잠시라도 멈추어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위험한 공간으로 변하는 곳이다. 도로 안에서 벗어난 ‘갓길’의 정차 역시 위험하기 짝이 없다. 또한 갓길에서는 아무도 오래 머물 수 없다.
그러나 남자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갓길에 정착하고 만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여성은 옆에서 잠들어 있다. 갓길에 정착하자마자 검은색 승용차가 주인공 차 뒤로 속도를 낮추어 슬며시 멈추어 선다.
극심한 긴장감에 주인공은 그 차가 여자의 남자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며 다시 차로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을 몇 번 반복하다, 눈을 떠 보니 병원에 입원해 있는 자신을 본다.
주인공 옆에는 삶의 갓길로 밀려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이 있을 뿐이다. 그는 간신히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생각은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결국 주인공은 여자가 어느 시점에서 ‘당신과 함께 있는 시간을 더는 견딜 수 없다’며 고속도로 갓길에서 다른 차를 잡아타고 가버린 기억의 편린을 찾아낸다.
자신이 병원에 온 것도 여자의 남자가 자신을 폭행하고 여자를 데려간 것이 아니라 여자 스스로 간 것에 대해 복잡한 감정과 아픔을 느끼다, 갓길에서 스스로 잘못해 다친 상처 때문인 것도 어렴풋이 알아낸다.
작가 최수철은 사랑의 행위도 고속도로의 갓길과 다를 바 없다고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다. ‘사랑의 행로는 일상의 무한질주 바로 옆에서, 그 무한질주로부터 끊임없이 위협을 당하며, 그 갓길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어디 사랑만이 그러하겠는가. 왜 달려야 하는지도 모른 채 멈추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우리들의 인생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어차피 계속 달려야만 하는 삶에서 사랑의 정열도 삶의 정열도 갓길에 놓여 있기는 마찬가지다. 만약 이러한 정열이 위험하고 걱정된다면, 식상하지만 우리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이용하면 될 것이다.
최수철 지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