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THE READER>>

태초의 말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언어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말을 좀 더 오래 보존시키거나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을 전달하기 위해 문자를 만들었다. 이제 말의 음성언어와 글자의 문자 언어가 나뉘게 된 것이다.

처음 문자 언어가 생성된 시기에 사람들은 문자는 단지 음성을 보조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포스트 모던시대가 도래하면서 사람들은 점차 문자 그 자체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고 그 자체의 의미(기의보다 기표)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문자에만 몰두한 나머지 이제는 음성 언어가 오히려 언어의 체계에서 밀리게 되었다. 정보와 지식 그리고 권력까지도 이른바 텍스트(TEXT)라는 것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이른 것이다. 이즈음에 영화 <더 리더>의 중요한 가치가 있다.

갑자기 성홍열로 하굣길에 고통을 받는 15세 소년 마이클을 30대 여인 한나(케이트 윈슬렛)가 도와준다. 그 도움을 계기로 마이클(랄프 파인즈)과 한나는 비밀스런 연인 사이가 된다. 언제가 마이클과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한나는 앞으로 관계를 가지기 전 책을 읽어 주어야 한다는 단서를 붙이게 된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 <오디세이> 등을 마이클은 한나에게 읽어주면서 서로의 관계는 깊어져 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한나는 말 한마디 없이 마이클 곁에서 떠난다.

이유는 육체노동의 일을 했던 한나에게 회사에서 사무직 자리로 옮겨 준 것이다. 한나는 문맹자였다. 한나의 상사는 사무직의 자리로 가는 것은 승진한 것이라며 말했지만 한나에게 사무직은 승진이 아니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수치심을 크게 느끼고 있던 한나는 그 자리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감시관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여러 사람들을 죽이는데 관여하게 된다.

8년 후,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재판에 참관했다가 우연히 피고인 신분의 한나를 발견하게 된다. 한나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문맹자라고 인정만 하면 큰 죄를 면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문맹자라는 것을 감추는 대신 혹독한 징역을 살게 된다.

마이클은 한나가 문맹인이라고 나서서 변호해 주지 않았다. 그런 복잡 미묘한 감정과 죄책감으로 마이클은 자신의 집에서 책을 읽어 녹음테이프에 녹음한 후 한나에게 조금씩 나누어 보내준다. 한나는 거기서 혼자 마이클이 보내준 음성과 원본 책을 비교하면서 글을 깨우치게 된다.

마이클은 형량을 마치고 나온 한나에게 집과 일할 곳도 마련해 주지만 감옥에서 자신의 잘못한 행동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냐고 말하면서 한나와 자신의 큰 거리를 만들어 놓는다. 한나의 무죄를 변호하지 않은 마이클은 자신은 돌아보지 않으면서 또 다시 인텔리 층의 비겁함을 보여준다. 그에 한나는 조용히 자신의 감옥에서 자살을 택한다. 

한나에게 있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했던 일이 왜 잘못이 되는지 그녀는 인정하기 어려웠다. 수용된 그 개인의 고통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한나는 그것이 국가에서 시킨, 또는 더 나가 그 나라의 인텔리 층이 만들어 놓은 모집 광고를 보고 찾아갔을 뿐이다.

문맹자를 만들어 놓은 국가에서 문맹 퇴치 보다는 문맹 자체가 주는 모욕감을 키우는 사회로 만들었기 때문에 한나를 죽게 만든 것이다. 한나가 그토록 누군가 자신에게 책을 읽어주길 바랐던 이유는 책이 다른 누군가와 통하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글을 다 깨우치고 난 후 그의 유일한 지인인 마이클 마저 한나의 죄만 놓고 성토하려 할 때 한나는 더 이상 글 또는 책이 주는 기쁨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한나에 대해 다양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인텔리 층의 사람들이나 변호사 마이클은 한나에게 책을 읽을 수 있을 때 까지 읽어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기 보다는 읽지 못하는 한나를 조롱하거나 멸시하기에 더 바쁘지 않은가. 오늘도 이런 모순 때문에 스스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관리가 되려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우리 소외된 이웃을 찾고 그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