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지인이 한숨을 내쉬며 내게 말을 걸었다. 자신의 아들이 아파서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였다. 지인은 어린 아이가 특수질환으로 아픔을 겪고 있으며, 소위 유명하다는 권위자를 찾아 진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지인은 부모의 마음에 여러 가지 궁금한 사항이 있어 몇 가지를 묻자, 매우 퉁명스럽고 거만하게 그 권위 있는 의사는 여기서 수술을 하던지 그냥 그렇게 살고 싶으면 다른 곳에 가던지 마음대로 하라며, 매우 고압적이고 불쾌한 시선으로 지인을 향해 딱 잘라 말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러한 경험은 굳이 부모가 되지 않았어도 환자 된 경험이 있다면 한두 번쯤은 겪었을 이야기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우리가 흔히 접하는 광경은 집단으로 몰려다니는 의사들의 회진 모습이다. 침대에 둘러선 젊은 수련이들 앞에서 권위 있는 의사는 환자에게 질문을 하고, 가끔은 손으로 상처 부위를 쿡쿡 찌르거나 만져본다. 환자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한갓 사물, 또는 질병 그 자체가 되고, 의사의 경험과 지식을 입증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시선은 권력이다>의 저자는 이러한 것에 대해 시선으로 의사들의 권력관계를 설명한다. 우선 환자는 의사의 관찰에 대한 시선의 대상 일뿐이다. 의료진들이 한 병동에서 다른 병동으로 전지적 시선을 번뜩이며 돌아다닐 때 환자는 질병의 공간적 배치와 함께 인간적 존재는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의사의 막강한 권한은 환자를 관찰하는 시선으로부터 나오는데 의사는 이러한 시선을 한 사회의 제도에 의해 지지받고 합법화된 시선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아마도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환자의 알몸을 처다 보았다면 다음날 신문 사회면을 크게 장식할 것이다.

의사는 막연히 눈에 보이는 것을 관찰하고 확인하는데 끝내지 않고 결정과 개입이라는 권한까지도 갖기 때문에 그 시선이 과히 고압적이라도 별다른 말을 쉽게 내 뱉지 못한다. 그러나 의사의 시선에 대해 권력이 붙기까지는 여러 가지 역사적 배경이 있다.

저자는 이 권력의 배경을 근대적 임상의학의 형성과 함께 바라보고 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혁명 주도세력들은 의사를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병원을 강제로 폐쇄하고 병원의 재산은 압수하며, 그 돈을 은행에 예치하거나 빈민구호기금으로 쓰게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외국과의 전쟁에서 끊임없이 환자들이 속출하게 되고 의사의 수요가 부족하게 되자 정부는 아무에게나 약간의 의료시술훈련을 시켜 군의관을 만들었고, 이 사람들이 전역 후 민간인 의사가 되어 정부의 관리감독 없이 많은 의료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사태가 매우 혼란스럽게 되자 몇몇 정규교육을 받았던 의사들이 은밀하게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학생들을 바로 가르치기 위해 환자들 앞에서 치료와 임상을 동시에 행했던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확대되면서 병원들이 다시 새롭게 지어지고 학교가 세워졌으며, 의사자격증의 취득도 어려워졌다. 자연히 의과대학 교수는 사회의 매우 유력한 인사가 되었다.

여기서 대학의 부속병원 즉 오늘날의 종합병원은 환자를 진찰하는 동시에 의대생들을 교육하는 임상의 장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환자는 진료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여러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임상의 한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 당시 환자들은 자신이 병으로 죽을지라도 인류의 지식에 뭔가 보탬을 주고 죽으므로 아주 고귀한 죽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의학 공부의 장으로서 진료소는 증상이 특이하면 할수록 환자는 더욱 흥미로운 존재가 되며, 아이러니하게도 질병의 공간적 배치와 함께 환자의 인간적 존재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의사들은 임상 실험이 해부학의 대두와 함께 한 사람의 외부는 물론 내부까지 볼 수 있는 권한까지 갖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발달은 의학의 발전과 생명의 연장이라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서로 상호 소통할 수 없는 시선, 일방적으로 쳐다보는 시선은 폭압적이고 상대를 즉자적 존재 즉 대상으로 사물화시키고 만다. 물론 이 땅의 모든 의사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평생 빈민들의 구제와 치료를 위해 살다간 훌륭한 분들이 존재하며, 질병의 공간적 배치와 환자의 인간적 존재까지 고려하는 의사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믿는다. 임상학의 생성 초기 고귀한 환자들의 희생으로 의료역사 발전이 함께 성장한 것을 믿는 의사라면 그들의 시선은 환자의 시선과 함께하며 상호보완적 시선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시선은 권력이다>는 오랫동안 미셀푸코의 저서를 번역해온 저자의 노력만큼 책의 상당수 부분이 미셀푸코의 이론으로 녹아있다. 세상의 모든 현상을 시선이라는 주제에 맞추다보니 다소 도식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나 미셀푸코의 이론을 저자의 철학적 지식과 함께 풀이해 일반인들에게도 쉽고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는 책이다.

                                                     기파랑/225p